리즈성형칼럼

제목

‘환자 있는 곳에 의사 있으니까요.’

환자 있는 곳에 의사 있으니까요.’

 

이 평범한 말 한 마디는 내가 개인병원을 운영하면서 환자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믿음 중 하나이다.

 

연말에 한 모녀가 병원을 찾아왔다. 여러 병원을 다니다가 우연히 간판을 보고 올라온 것이다. 몇 가지 눈의 상태에 대해 같이 의논하고 필요한 수술과 그에 따른 수술 후 관리 요령에 관한 상담을 마치고 병원 문을 나섰다.

 

그 후 깊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 지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예약전화가 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챠트를 확인하고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어머니는 처진 눈도 문제지만 눈두덩이가 안으로 푹 꺼져서 이것도 함께 해결해주어야 할 상황이고, 딸은 좌우 눈의 모양이 조금 다른 상태라서 까다로운 수술로 예상되지만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수술 당일인 토요일, 어머니가 먼저 수술을 하고 뒤이어 딸이 함께 수술을 하였다.

 

어머니는 눈썹을 위쪽으로 당겨서 고정해 주었고, 눈썹아래의 꺼진 부분은 눈썹에서 떼어낸 조직을 이식해서 해결해 주었다.

 

이어서 딸은 좌우의 서로 다른 눈의 모양을 눈꺼풀 근육의 힘을 정교하게 조절해서 감쪽같이 맞추어주었다.

 

걱정 끝에 어느 정도 좋은 결과를 보게 되어 기분 좋은 얼굴로 귀가해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 즈음에 병원당직 전화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수술한 모녀 중 딸이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어머니께서 현기증을 일으켜서 화장실에서 쓰러지면서 얼굴을 다쳤다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통해 들어보니 어머니께서 크게 다친 것은 아닌 것 같고, 또 정신을 되찾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걱정이 된다고 한다.

일단 집 근처의 작은 종합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하고 나서 큰 문제가 없으면 괜찮을 것 같다고 이야기해 주고는 휴일이지만 일요일 아침에 병원에서 보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아침, 일가족이 함께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병원을 찾아왔다.

 

일단 이들을 안심시키고 나서 어머니의 상처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넘어지면서 부딪쳤다고 하는 상처에는 약간의 타박상과 찰과상만 보이고 다행히 수술한 자리는 살짝 부어 있기만 할 뿐 달리 이상한 점은 없었다.

 

환자 일행에게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나서 상처 드레싱을 해 주고 귀가시켰다. 휴일에 이렇게 나와 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거듭 했다.

 

환자가 있는 곳이 바로 의사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가요?, 이제 안심해도 될 것 같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라고 대답해 주었다.

 

일주일 뒤 두 모녀는 실밥을 빼러 다시 병원을 찾았다.

 

어머니가 넘어지면서 다친 순간 이것을 지켜본 가족들은 깜짝 놀라서 어쩔 줄 몰랐다고 한다.

 

혹시나 싶어 병원에서 알려준 대로 전화를 해서 나와 통화를 하고 나니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더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머니는 원장님 목소리가 어찌나 반갑던지...’ 하면서 이야기했다.

 

이제는 지나간 일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겠지만 그 때는 어떤 느낌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일단 나의 환자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문제는 없는 지, 안전한 상태인지 확인하지 않고서는 의사인 나 스스로가 마음이 불편해 지는 경우가 더 많다.

 

환자를 둔 의사들은 누구나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얼마 전, 요양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해서 많은 인명사고가 났다. 병원의 특성상 호흡에 문제가 많은 노년의 말기 환자들이 많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노년 인구가 늘어나고, 간병에 대한 공급이 부족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겠지만, 그런 힘든 조건에서도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살리기 위해 노력하다 병원의 의사, 간호사들이 희생되었다.

 

바로 환자가 있는 곳에 의료인이 있고, 그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자신마저 돌보지 못한 경우라 하겠다.

 

의사자로 지정해서 기리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고 만다면, 얼마 전 제천 화재처럼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될 지도 모른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여기에 근무하는 의료인에게 있다고 하기보다, 이러한 시설을 어떻게 건설하고 운영하며 이것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노년 인구가 젊은 인구보다 앞으로 더 많아지는 시대에 우리의 사회가 좀 더 깊이 고민해야 할 일이다.

 

그들의 소명의식이 헛되지 않게 법이나 제도적인 뒷받침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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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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